[인터뷰] 010통합반대운동본부 서민기 대표 "쥐꼬리 만한 혜택으로 생색내기"
[미디어오늘이재진 기자]
"방송통신위원회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KT는 마케팅의 기본도 안된 집단이다"
"거지한테 적선하는 것도 아니고..."
010 통합반대 운동본부 서민기 대표의 입에서 거친 말이 쏟아져 나왔다. 그럴 만도 했다. 적게는 몇 년, 많게는 몇 십 년 '소중한 고객'의 대우를 받다가 하루아침에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됐다.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가 지난 23일 KT의 2G 서비스 중단을 조건부로 승인했기 때문이다.
방통위는 KT에게 14일 동안 2G 가입자에게 서비스 중단을 알리는 통지를 하고, 가입전환을 지속적으로 실시하라고 이용자 보호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바뀌는 사실은 없다. 다음달 8일부터 2G 가입자 15만 9천명은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다.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KT의 3G 서비스로 전환하거나 타 이동통신사로 서비스를 전환해야 한다.
서민기 대표는 25일 미디어오늘과 전화통화에서 2G 종료승인에 대한 효력 정지 가처분을 신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와 별도로 KT의 불법 행위에 대해서는 민사소송을 제기할 예정이다. 소송 규모는 3만 명 정도로 예상하고 있다.
기존 번호 계속 쓸 수 있게 해달라는 건데...
010 통합번호 반대운동본부는 이름은 거창하지만 2G 가입자들이 자신이 기존 번호를 원래대로 쓰게 해달라는 민원 창구와 같은 곳이다. 일각에서는 마치 2G 이용자들이 '알박기'해서 보상을 노리는 집단으로 매도하기도 한다.
하지만 서 대표는 "KT 2G 가입자 15만 9천명 가입자는 2G 서비스가 꼭 좋아서 쓰는 게 아니라 대다수가 2G 서비스를 쓰지 않으면 자신의 번호를 바꿔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쓰는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기존 번호를 통해서도 3G 전면 허용이 가능하도록 해주라는 것이 이 단체의 명확한 요구다.
자신의 기존 식별번호를 고수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일례로 최장 27년 동안 2G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 사람도 있는데 20년 넘은 세월동안 전화번호와 함께 사회적 네트워크를 형성해 온 셈이다.
서 대표는 "수십 년 동안 써온 전화번호로 사회적 네트워크를 형성해놨는데 그것을 하루 아침에 깨버리면서 그 제반비용을 소비자에게 전가시키고 있는 것"이라며 "영업사원은 명함을 다시 파야 하고 인터넷 개인 정보를 수정해야 하고, 현금 영수증 번호를 수정해야 하고 그런 시간적 물리적 비용은 누가 대줄 수 있느냐"고 호소했다.
현재 방통위는 2G 서비스의 기존 식별번호로도 3G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고 홍보하고 있지만, 이것 역시 2013년까지 한시적인 이용만 가능할 뿐이다. 방통위의 강제 번호통합 정책 때문이다.
하지만 KT는 2013년 이후에도 기존 식별번호가 바뀌지 않는다고 '거짓말'을 하며 2G 가입자를 설득해 해지한 사례가 발생하기도 했다.
▲ 미디어오늘 자료사진 | ||
방통위는 지난 9월 "01X 이용자의 3G로의 한시적 번호이동 시행계획"을 결정했다. 이에 따라 이동통신사업자들은 '이동전화 번호이동성 개선 이행명령'을 가지고 소비자에게 일정 기간 경과 후 010으로 번호를 변경할 것을 강제하고 있다.
하지만 전기통신사업법 제58조 제1항에 따르면 "이용자가 전기통신사업자 등의 변경에도 불구하고 종전의 전기통신번호를 유지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010 통합반대 운동본부는 이에 대해 "방통위의 결정은 사업자 변경이 없는 경우에 한해서만(자사 2G에서 3G로의 번호이동) 한시적 번호이동을 할 수 있도록 한정함으로써 번호이동성 제도의 취지 자체를 왜곡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쥐꼬리만한 보상...거지한테 적선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KT의 3G 서비스로 전환하거나 다른 이동통신사들의 서비스로 전환하면 보상이 많은 것도 아니다.
서 대표는 "거지한테 적선하는 것도 아니고"라며 KT 보상 정책을 강하게 비난했다.
KT는 자사 2G 가입자들이 자사 3G로 전환할 경우 3G 가입비 2만4천원을 면제해주고 무료 단말기를 제공하고 위약금과 할부금은 면제해주기로 했다. 또 월 6천6백원씩 요금을 할인해주고, 장기할인서비스를 마일리지 형태로 승계해주기로 했다.
서 대표는 KT의 보상 정책에 대해서도 조목조목 반박하며 "기존 번호의 서비스 할인 같은 것은 전혀 반영된 것이 없고 일종의 생색내기를 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서 대표에 따르면 2G 서비스 가입자의 기본 요금은 1만2천원 정도 수준이다. 스마트폰으로 3G 서비스에 가입할 경우는 3만5천원이 기본 요금이다. 세 배 이상 차이가 나는 셈이다. 위약금을 면제해주기로 했다지만 2008년부터 2G 단말기 모델 생산을 중단하면서 2G 가입자 대부분은 위약금 문제가 적용되지 않는다.
34종의 단말기를 무료로 제공해준다지만 해당 단말기는 현재 어느 누구나 통신사 대리점을 가면 무료로 얻을 수 있다.
특히 2G 가입자 대부분은 장기 서비스 고객으로 통신요금의 15%를 할인받는 장기 할인 혜택을 받고 있는데 3G 서비스로 가면 전혀 보장을 받지 못한다.
서 대표는 "가입비, 위약금 등을 면제해준다고 하는데 일반적으로 회사가 일방적으로 고객의 계약을 폐기했다면 당연히 해줘야 할 것들"이라고 비난했다.
서 대표는 장기할인 요금 승계 문제에 대해서도 "SK의 경우 2G 가입자들이 자사 3G로 가입할 경우 요금제를 승계해줬다"고 꼬집었다.
방통위는 다른나라와 비교해 전체 KT 가입자 중 2G 가입자는 0.96%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주요 근거로 내세워 폐지를 승인했는데, 서 대표는 0.96%라는 숫자도 '허수'일 수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실제 지난 3월까지만 해도 KT 2G 가입자는 110만명에 이르렀다. 하지만 3월 이후부터 101만명(4월), 81만명(5월), 53만명(6월)으로 급격히 감소하다가 11월 폐지 승인 직전 15만 9천명으로 집계됐다. 물론 언론보도를 통해 드러났듯이 KT 2G 이용자의 급격한 수 감소는 KT의 위법적 행태가 원인일 가능성이 높은데 이외에 가입자 중 자기도 모르게 해지된 사례가 있을 수 있다는 의혹이다.
서 대표는 "기존 식별번호의 서비스를 정지해놓은 사람 중에 일방적으로 해지돼서 이 사실을 모르고 있는 사람이 많다"고 전했다.
군대나 해외에 가 있어 서비스를 정지해놓거나 서비스를 이용하지는 않지만 번호를 간직하기 위해 일정 요금을 내는 사람들도 많은데 이 사람들을 상대로 강제 해지한 사례가 많다는 얘기다.
서 대표는 "0.96%라는 숫자는 분명 허수가 들어가 있다. 해지 사례별로 데이터를 뽑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서 대표는 "폐지 승인 이후 배신감을 느껴서 KT의 2G 서비스를 제외하고 모든 KT 제품을 다 해지하겠다는 사람이 많다"며 "마케팅이라는 것은 신규 가입자를 위한 것도 중요하지만 기존 고객을 활용해 재마케팅이 보다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KT는 마케팅의 기본도 안된 집단"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이번 방통위의 결정이 다른 이동통신사들에게 나쁜 선례로 남을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지난달 기준으로 SKT의 2G 가입자는 729만명, LGU+는 931만명에 이른다. 특히 SKT는 011번호 가입자의 충성도가 높아 브랜드화에 성공한 케이스로 꼽히는데, 번호통합 정책에 따라 2G 서비스가 종료되면 큰 반발에 부딪힐 것으로 보인다.
서 대표는 "KT는 무리를 둬서 브랜드 가치를 깎아 먹은 것인데, 다른 통신사들도 딜레마에 빠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 대표는 지난 2월 제기한 방통위의 강제번호통합정책에 대해 헌법소원에 기대를 걸고 있다. 현재 헌법 소원은 '본안'을 통과해 최종 헌재 결정만을 남겨두고 있다.
서 대표는 "방통위의 강제 번호 통합정책은 법적 근거가 없다. 국민 편익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승소하겠다"고 밝혔다.
(11월25일 오후 5시15분, 일부 내용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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